아마 고등학교 2학년 때 즈음으로 기억한다. 나는 소위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 즉 사춘기를 심하게 격고 있던 매우 비뚤어진 학생이었다. 주위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내 생각만을 내세우는 그야말로 아집(我執) 그 자체였다. 그때당시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바른 시각으로 보지 못하고 항상 모든 것을 부정하며, 내 생각대로 해석해버리는 아주 못된 습관을 가지고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흥미를 가지지 않은 과목들은 모두 그저 그렇거나 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조금 흥미를 가지고 있던 과학, 한문, 영어, 일본어 뭐 이런 과목들에서만 아주 조금 좋은 성적을 거두는 별로 볼품없는 학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문 시간에 눈에 띄는 한 구절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편의 민이호학(敏而好學)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구절이다. 나는 지금도 이 글을 본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배움에 흥미를 얻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내방식대로 살아가던 나에게는 매우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 그런 글이었다. 민이호학(敏而好學) 불치하문(不恥下問)의 뜻과 유래는 다음과 같다.
춘추(春秋)시기, 위(衛)나라 대부(大夫)였던 공어(孔圉)는 매우 겸손하고 배우기를 열심히 하고 또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당시 사람들로부터 찬사(讚辭)와 칭송(稱頌)을 받았다.
공어가 죽자, 위나라 군주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호학(好學) 정신을 배우고 계승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에게 문(文) 이라는 봉호(封號 : 임금이 호를 봉하여 내려줌)를 하사하였다.
그러자 당시 공자(孔子)의 제자였던 위나라의 자공(子貢)은, 공어에게는 잘못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그렇게 훌륭하지 않으며 따라서 문이라는 봉호를 받기에 미흡하니 또한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자공은 스승인 공자에게 공어의 시호(諡號 : 임금. 정승. 유현들의 공적을 기려 죽은 뒤에 내리는 이름)는 무엇 때문에 문(文)이라 합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가 말하기를
“그는 영민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아랫사람에게도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敏而好學 不恥下問 ; 민이호학 불치하문).
그래서 그를 문(文)이라 하였던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공자의 대답에 자공이 공어를 다시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이 글을 접했을 당시 그 영향력은 미미했으나, 그래도 이 글을 계기로 공부를 다시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운 좋게 대학까지 진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해서 나에게 배움에 소질이 있었는지 뒤늦게 깨우치게 되었고, 생각지도 못한 높은 성적을 거두면서 졸업을 하게 되었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숟가락 젓가락 쥐는 법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면서 인생을 지낸다. 이러한 배움에 있어서 과연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언제든지 자신의 의견이 틀리면 고칠 줄 알고 수정 보완해서 좀 더 발전하는 자신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지금껏 총 12년의 의무교육과 4년간의 대학생활 그리고 2년간의 대학원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무엇을 배웠는지 그리고 어떻게 배웠는지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우리의 속담에 여든 살 된 노인도 세 살 된 손자에게서 배운다. 라고 하는 속담이 있다. 하여간 무엇이든 배움에는 부끄러워해서는 큰 사람이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내가 느끼기에 사람들은 각자의 자존심 때문에 아랫사람에게서 만큼은 아무것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나 형제지간에서도 형이 동생에게 만큼은 지려하지 않고, 또한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내 동생이 하는 말은 대부분 무시해버리고 부정하기 일쑤였다. 오로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해서 가르치고 훈계만 하려고 했지, 내 동생의 의견에 따듯하게 대해준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내게 득(得)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동생에게 미움만 받고 멀어져버린 아무의미도 없는 그저 식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흘러 생각을 고쳐먹고 내가 먼저 동생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형제는 사이가 점점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요즘은 나도 내 동생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느끼고 있다. 그리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면서 상대방의 장단점을 찾아내 발전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진정한 리더십은 카리스마도 아니고 결단력도 아닌, 아랫사람의 의견에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의견 중에 좋은 의견이 있으면 배우고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최근 회사생활에 관련된 설문조사 내용 중 상사와의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다고 보고된 바가 있는데, 아랫사람들을 무시하면서 부하직원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상사가 없고, 또한 이러한 상사를 비꼬고 무시하는 신입직원들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현상인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 많은 기업에 무수히 많은 리더들은 있어도 진정한 리더십을 갖춘, 존경할만한 지도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들에게 리더십을 느끼기도 하지만 자신을 낮추면서 먼저 다가가는 지도자들에게 더 많은 리더십과 존경심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요즘은 아랫사람을 이용하여 위로 올라가거나 그들을 도구삼아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려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이러한 모습을 볼 때면 종종 불치하문(不恥下問), 역지사지(易地思之)와 같은 사자성어들이 떠오른다.
벼도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사람은 점점 배워가면서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목을 뻣뻣이 세우고 큰 목소리로 자신을 뽐내기만 하려한다. 이는 군대와 같은 조직사회에서나 필요한 것이지 배우는 학자의 입장에선 별로 좋은 자세가 아닌 것 같다. 배우면 배울수록 겸손해지고 그에 맞는 처신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나도 단점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말을 당당하게 꺼내놓을 만큼 자신 있고 떳떳한 그런 사람은 아니다. 단지 지금의 내 마음가짐과 자세가 바르지 않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고, 이를 고치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년 전, 내 자신의 앞날을 위해 배움을 선택하고 어느덧 시간은 흘러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나의 배움에 대한 자세는 변함이 없을 것이며, 나에 관한 지적과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장점은 최대한 살려 좋은 리더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2009년 12월 23일
金 正 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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